번뇌즉보리
괴로움,역경,아픔,슬픔 같은 부정적인 것들도 필요하다.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마라.그것이 일어나는것을 마땅 허용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깨달음은 더 빨라진다.괴로움,초조,질투,답답함,불쾌함 등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마라.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이라는 잘못된 관념에서 놓여나라.
수행이란 바로 그 괴로움,초조와 질투,불쾌감이 올때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바로 그 괴로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괴로움과 초조와 답답함을 살아주는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바로 그 순간 일어나는 감정과 현실을 온전히 존중해주고 받아들여 주며 일어나도록 허용해주고 살아 주는 것이야말로 참된 명상이다.도망치거나 벗어날 필요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찾아온 고마운 스승이기 때문이다.그것이야말로 괴로움을 가장하고 나타난 진리이다.번뇌즉보리 번뇌 그 자리로 뛰어들때 깨달음은 있다.
큰 도는 항상 눈앞에 있습니다.목전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도,깨달음,부처,열반,해탈,견성,자성,불성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이것을 설하지만,이것은 나와 따로 떨어져 있는것이 아닙니다.불법은 불이법이며,불이중도입니다.즉,둘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다른곳에 있을수 있겠습니까?어떻게 이 법,도를 찾아 바깥으로 찾아나설수 있겠습니까? 찾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둘이 아닙니다.그러니 눈앞에 있다는 말도 맞지 않아요.그만큼 둘이 아니고,가까이 있다는 말을 목전의 당처(이곳 이 자리)라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내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것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는다면,그것은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꼴이고,눈을 가지고 눈을 찾는 것입니다.찾고 있는 대상은 놔두고,먼저 찾고 있는 그놈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십시오.명백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도를 찾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지요.
찾을 도는 중요하지 않아요.찾고 있는 그 놈이 누구입니까? 무엇이 도를 찾고 있지요?답을 내릴수는 없지만,어쨌든 중요한것은 이렇게 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바로 그 찾는 놈이 찾을 것입니다.찾아야할 객관 대상이 따로 있고,찾는 놈이라는 주관이 따로 있다면,주객이 둘로 나뉘는 것일뿐입니다.그것은 도가 아닙니다.둘이 아닌 불이법만이 참된 법입니다.
찾는 놈이 있다는 사실이 곧 찾고 있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도를 찾고,깨달음을 찾는 당신이 곧 깨달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찾는 '이것'이 찾는 '그것'입니다.이렇게 작용하는 순간 그것은 명백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모양으로 찾으려 하면 찾을수 없습니다.그럼에도 중생의 습은 모양만을 볼줄 알다보니,모양으로 찾으려고 해서 보지 못할 뿐입니다. 본다는 사실이 눈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로 눈을 찾아야 하는것이 아닙니다.
ㅡㅡ법상스님 글 일부발췌ㅡㅡ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오늘 하루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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