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에 얽매이면 진실을 볼수없다.
언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다. 수면에 비친 달은 수면이 거울처럼 고요할때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그러므로 도를 알고자하는 이는, '도가도 비상도'의 의미를 숙고할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워버려야 한다.도는 비움만을 필요로 하기때문이다.
도의 실체
노자가 말씀한 도는 어떤 도인가? 어떻게 하면 그 도를 알수 있는가? 세상에는 그 (도)를 아는 길이 무수히 있지만 오히려 방해물의 역할만 했다.신앙의 세계는 그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만남을 가로막았고 수행의 세계는 '내가 닦아서 내가 이루었다'는 아상 때문에 그를 알수가 없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그(도)를 알기 위해 해야 할일은 없다.필요한것은 오직 '수용'과 '비움'뿐이다.수용은 복잡한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그냥 순진한 아이 마음이 되어 그가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나의 참 주체로 모시고 지키는것이다. '비움'이란 포기와 체념이 아니라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나'를 비우는 것이다.그 '나'는 그를 의심하고 부정하며 거부하라고 끊임없이 화유하는 '나'다.
'고요함'은 비움으로 인해 되살아난 나의 본성이며,참된 수용은 나의 정성과 그 '나'가 비워지는 만큼 이루어진다.하지만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으며,내가 할수 있으며 내가 아는것이 있다고 믿는 한,그를 만날수 없다.
노자가 말씀한 그(도)는 '스스로 살아 있는 항구불변의 실존'이며 우주 삼라만상의 영원한 본질이다.그에게서 하늘(허공)과 땅이 열렸으며 형체있는 모든것이 그로부터 나왔다.형체있는 모든것이 그에 의해 살려지고 있으며 유형,무형을 막론하고 그가 없는 곳은 없다. 대자연의 운행도 그의 것이고 우리가 거역할수 없는 순리도 그의 것이다.
그는 우리가 그를 알기를 고대하고 있다.우리가 그를 알면 그는 무척 기뻐한다.자신을 알아보는 자식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그는 우리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지만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결코 우리의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우리는 그에게서 태어났고 양육되었지만 우리 스스로 살아갈수 있다고 착각했다.
착각은 그와의 이별을 초래했고 지금도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별은 우리 스스로 고생을 짊어진것이고 그 결과는 방황끝에 맞이하는 죽음이다. 만약 그와 이별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지금 천국 상태에 있을것이고 우리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누리고 있을것이다.
-책내용 일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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