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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과 윤회의 비밀/티벳사자의 서

by 나는 누구 2020. 4. 26.

환생과 윤회의 비밀

선을 추구하라. 그대가 위험에 처하기 전에.

고통이 그대를 지배하기 전에. 그리고 그대의 마음이 예리함을 잃기전에. <티벳사자의 서>는 육체의 삶을 초월한 언어로 '고귀하게 태어난 자'에게 말한다.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따라서 인간 모두는 이지상의 삶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생과 사의 윤회계 속에서 방황하는 일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리고 육체가 소멸되는 것에 따른 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도록 거룩한 신들에게 도움을 청해,마침내 자기 내면의 완전한 불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번째로 갖게 되는 의문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하는것이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갖는것은 바로 이 '죽음의 기술'에 대한문제다. 죽음의 테크닉은 죽음을 좋은 미래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만일 그것에 실패할 경우에는, 곧 윤회계의 방황으로부터 해방을 얻지 못했을경우에는 다시 인간 육체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게 해준다. 이렇듯 '죽음의 기술'은 죽음을 또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만들어준다.

이 책은 사후에 곧바로 시작되어 환생으로 끝나는기간, 이른바 사후세계의 중간 상태를 다루고 있다.인간이 이 중간상태에 머무는 기간은 상황에 따라 길어질수도 있고 짧아질수도 있다고 믿어진다.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삶은 일련의 의식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의식 상태들은 하나에서 그 다음으로 연속해서 이어진다.

 

첫번째의식상태는 탄생의 순간에 갖는 의식이고, 마지막은 죽음의 순간에 갖는 의식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의식 상태는 다시 첫번째 의식 상태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의 상태를 우리는 바르도라고 한다.바르도는 중간상태 라는 뜻이다. 바로 이 중간 상태에서 '낡은'존재는 버려지고 '새로운'존재로의 탈바꿈이 일어난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또한 각각의 존재들 역시 단 두번의 삶의 아니라 무수한 삶을 반복한다고 가르친다.윤회라고 부르는 이 탄생과 죽음의 사이클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모든 존재는 끝없이 삶을 되풀이 할수밖에 없다.'윤회'는 말그대로 '방황'이라는 뜻이다.이 방황을 멈추고 대자유를 얻으려면 도덕과 헌신과 참다운 지식을 통해 무집착의 마음에 이르러야만 한다.

 

집착이야말로 생과 사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때의 대자유란 공,니르바나(열반), 또는 그 밖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궁극의 상태를 실현하는 것이다.죽음의 순간에 어떤 의식을 갖는가가 그 영혼의 미래상태를 결정짓는다. 카톨릭과 힌두교 모두는 임종하는 사람을 위해 쉼없이 기도문을 외우고 성인들의 이름을 반복한다.

 

사후세계의 삶은 곧 지상에서의 삶의 연속이다 사자는 처음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자는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이 세상속에 있다고 믿는다.인간의 영혼은 죽어서도 생전에 갖고 있던 종교적인 믿음을 잃지 않는다. 또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생전의 습관도 곧장 버리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후상태에서 원하는 술이나 담재 따위는 실제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일종의 꿈의 상태이며, 다만 사자가 그것을 꿈의 상태인줄 모르고 실제 체험이라고 믿는 것뿐이다. 생전에 음주와 흡연 습관을 갖고 있던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자신이 계속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따라서 그 술과 담배는 다만 사자의 꿈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사자에게는 그것들이 생전에 경험하던 실물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음으로 사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지나간 삶의 기억을 짊어지고 있기때문에 자신이 아직도 전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육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이 지상에서 가졌던 육체가 아니라 일종의 '꿈의 육체'이다. 우리가 꿈속에서 보는그런 몸인것이다.

<티벳사자의 서>에 따르면 사자의 나쁜 카르마는 마지막 바르도에서 공포의 신들로 투영되어 나타나며,사자는 그것들로부터 달아나 점점 낮은 상태로 내려가다가 마침내는 여섯세계중의 하나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열다섯째날에 사자는 세번째 바르도에 들어선다. 전단계의 바르도에서 아직 대자유를 얻지 못했다면 사자는 이 단계에서 환생을 추구하게 된다. 그의 과거의 삶은 이제 기억이 흐려졌다. 이제 그는 미래의 새로운 삶을 가지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자는 여섯 세계의 색깔중에서 자신이 태어날 세계의 색깔을 취한다. 사자의 카르마가 그를 지옥으로 인도할 운명이라면 그는 심판을 받은 다음에 온몸이 부서지는 아득한 고통을 겪는다. 아니면 천상계나 다른 세계로 갈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결국에는 지상에 다시 환생해 새로운 카르마를 쌓기 시작한다.

 

형벌이나 보상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카르마에 따라 지옥계에서 형벌을 겪거나 찬상계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다 마무리되면 그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사자는 자신이 실질적인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꺠닫고 다시 한번 지상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살과 뼈를 가진 육체를 갖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것이다. 마침내 사자는 꿈의 세계인 바르도를 통과해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의 자궁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지상의 경험 세계에 꺠어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환생이다.

 

사후세계의 변화는 단순히 이 지상에서 축적한 행위들(카르마)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후세계의 행위는 지상에서의 행위처럼 새로운 카르마를 탄생시키지 않는다. 카르마는 육체를 갖고 있을 때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불교와 힌두교와 기독교는 인간의 사후의 운명은 지상의 삶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ㅡㅡㅡ책의 내용일부 발췌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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